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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게임이론가들의 전성시대

과거 미국에서 경매 관련하여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기에 작성해보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 등에 사용되는 주파수 사용권을 경매방식으로 민간기업에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경매방식을 채택할 경우 수의계약 방식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것으로 재정수입을 올릴 여지까지 있기에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정부는 이것으로 상당한 재정수입을 올린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따라서 각국의 정부들은 이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하였다. 

 

게임이론에는 경매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권리를 경매방식으로 판매하는 사례가 늘기 시작하면서 게임이론가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입을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는 경매방식을 찾기 위해서이고, 경매에 참여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가장 적게 써내면서 낙찰받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게임이론가들이 필요했다. 

 

실제 경매방식에 문제가 있어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입을 얻은 사례들이 많았다. 한 예로 1997년 미국에서 행해진 무선데이터통신 경매에서, 당초 180억 달러의 수입을 기대했었는데 실제로 얻은 수입은 1,360만 달러에 불과했다. 심지어 미국 중부의 두 도시의 주파수 사용권은 단돈 1달러에 팔린 경우도 있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 핵심적인 이유는 경매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신호를 주고받아 결과를 좌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한 기업이 특정지역의 주파수 사용권을 강력하게 원한다는 신호를 다른 기업에게 보내 그 기업을 물러서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자가 모두 물러간 상태에서 이 기업은 적은 금액으로 그 권리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매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신호를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드러난 한 경우의 예는 다음과 같다. 어떤 기업의 경우 써넣는 금액의 맨 끝 몇 자리를 지역 우편번호와 같게 만들었는데, 예를 들어 100만 달러라고 쓰는 대신 1,000,123달러라고 써넣는 것이다. 여기서 123이라는 숫자는 대상 지역 우편번호의 마지막 세 자리인데, 이 금액을 본 상대 기업은 그 기업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매방식을 선택할 때는 이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신호를 주고받기 어렵게 만드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위와 같은 신호의 교환을 막기 위해 써넣는 금액을 반올림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경매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또 다른 신호 교환의 방법을 찾아낸다. 어떤 기업은 두 가지 다른 금액을 써넣는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사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정부가 여러 단계에 걸쳐 행해지는 독특한 경매 방식을 선택한 것에 있다. 만약 각 기업이 특정 금액을 한 번만 써낸 것으로 경매가 끝난다면 신호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어진다. '입찰제'의 경우가 이런 문제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인데, 그럼에도 입찰제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경매 참여자가 금액을 크게 낮추어 쓸까봐 걱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단순하면서도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경매방식을 알아낸 사람은 큰 자문비를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