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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질병이 불러온 변화 2] 천연두와 최초의 물가상승

천연두는 두창, 포창이라고도 불리며 주요 증세는 고열 및 전신에 나타나는 특유의 발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연두 환자의 사진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염력이 굉장히 강력한 천연두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1157년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BC 1120년 중국에서도 천연두로 인한 사망자 기록이 있다. 천연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라비아에서 주로 발생하다가 중세 이후 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대유행을 되풀이하며 엄청난 사상자를 낸 천연두는 19세기 이후 영국 의사 제너가 창시한 '종두'가 보급되고 급감하였는데, 당시 천연두가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천연두로 인한 역사적 비극은 콜롬버스가 대서양 항로를 개척한 이후 발생했다.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자들은 천연두를 신대륙으로 옮기게 되었고 찬란한 문화를 형성했던 아즈텍의 인디오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520년 한해에만 500~800만 명의 멕시코 원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스페인 군대는 유럽에서 여러 차례 유행한 천연두에 내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멕시코 원주민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잉카 문명의 최후도 천연두를 포함한 질병이 영향을 미쳤다. 1526년을 전후로 스페인 군대가 천연두와 함께 들여온 독감, 디프테리아, 티푸스 등이 잉카 제국의 50~90%에 달하는 주민을 사망하게 만들었다. 1532년 167명의 보병, 67명의 기병 등 단 234명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잉카 문명이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연두로 인해 어떠한 현상이 발생했을까? 유럽의 신대륙 정복과 그 후 금융시장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연두로 인해 최후를 맞이한 아즈텍과 잉카가 과거 천여 년간 축적한 금과 은이 2~3년 만에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금화와 은화를 사용하던 유럽에서 이들의 증가는 곧 통화량 증가를 의미했다. 따라서 이는 물가 상승을 가져왔고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물가상승이었다. 16세기 유럽의 물가는 약 4배 정도 상승하였다. 연평균으로 계산하면 약 1.5%정도이기 때문에 2020년 3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0%인 지금과 비교하면 별 것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소비자 물가지수와 체감물가 수준이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준은 같지 않겠지만 16세기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것조차 경험해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혼란과 충격은 현대인이 느끼는 것보다도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인건비보다 공산품 가격이 더 상승하면서 상공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상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지위는 더욱 올라갔고 현재의 자본주의 토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