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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빈민들을 구제한 은행의 명과 암

2006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는 '그라민 은행'과 그 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였다. 그는 누구이며, 그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이 어떤 역할을 했기에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먼저 두 사례를 비교해보자.

 

사례1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이자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는 대학 교수 시절 한 빈민촌을 방문했다. 거기서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한 아낙네를 만났는데, 그녀는 대나무 의자를 만들 원재료 값인 22센트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중간 상인에게 의존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중간 상인에게 24센트에 대나무 의자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22센트를 받고 의자를 만들었다. 이것을 시장에 직접 팔면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 2센트를 벌기 위해 중간 상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사례2

케빈 타윌은 스탠포드대학 MBA과정을 졸업한 후 한 회사를 85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인수 자금은 없었지만 사모투자펀드를 조성해 자금을 조달하였고, 6백만 달러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액을 6년 후 2억 달러까지 성장시켰다. 주가 역시 인수당시 3달러에서 4년 후 115달러까지 상승하였으며 그는 큰 부를 얻을 수 있었다. 

 

두 사례를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재산이 없었지만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금융의 존재 여부'이다. 금융이 낙후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사례1의 여인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반면, 금융이 발달한 미국에 살고 있었던 사례2의 케빈은 짧은 기간에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1940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다카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밴더빌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치타공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고향 마을 주민들이 27달러가 없어 고리대금업자들에게 휘둘리는 현실을 목격하였다. 1976년 자신의 보증으로 국립은행에서 돈을 빌려 빈민들을 구제하기 시작한 그는 1979년 교수직을 내려 놓고 1983년 그라민 은행을 설립했다. '그라민(Grameen)'은 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라는 의미인데, 거의 모든 업무가 돈을 대출해 간 마을의 채무자들 모임인 '센터'에서 이루어졌다. 그라민 은행은 소득이 적고 신용이 낮아 은행으로부터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해줘서 가난을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였다. 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돗자리를 짜는 등의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융자금을 꾸준히 갚아 나갔다. 이와 같은 시스템으로 대출 회수율은 98%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도권 금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갖은 핑계를 둘러대면서 융자를 해주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태도에 맞서서 가난한 사람들도 은행의 혜택을 입어야 하며 이들에게 주어지는 융자는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적 권리임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제도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때, 이들이 이제까지 업보처럼 짊어져야 했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선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입니다."

 

실제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2006년 기준으로 그라민 은행의 직원 수는 1만 8151명에 달했고, 600만 명의 빈민이 그라민 은행에서 종잣돈을 빌려갔으며, 그 가운데 58%는 가난에서 벗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출 상환은 그가 자신의 보증으로 국립은행에서 돈을 빌려 빈민들을 구제하기 시작한 1976년 이후 평균 90%를 웃돌았다. 이런 무담보 소액대출제도는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등 세계 37개국 9,200만 명을 대상으로 확산되었고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좋은 시절과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9년 그는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왜 구속 위기에 처했나' 검색) AP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그가 구속 위기에 처한 이유는 그가 운영하는 '그라민 커뮤니케이션'에서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했으나 저지를 당한 뒤 해고된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논란이 된 것이 있는데, 그라민 은행이 방글라데시 최대 이동통신사인 '그라민통신' 등 자회사를 수십 개 거느리며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그것이다. 빈민구제라는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무하마드 유누스의 집안이 이들 사업을 통해 재산을 불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듬해 정계 입문을 선언한 것 역시 그의 순수성을 의심받게 하는 행위가 되었다. 

 

은행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은행은 대출 회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담보나 신용을 요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빈민은 은행으로부터 어떠한 기회도 얻지 못하기에 이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사실 은행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민간 은행 역시 주주들의 회사이고 그 위험을 수많은 주주들이 떠안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담보 없이 선의로 자금을 빌려주기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국민성 등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도움을 받은 경우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그 은혜를 어떻게든 갚는 경우도 있는 반면, 정말 많은 경우 돈을 빌려준 사람이 오히려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자금 회수도 못하는 경우 역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 차원에서 이런 일을 한다면 민간이 하는 경우보다 회수율이 훨씬 떨어질 것은 뻔하다. 누군가 희생을 하며 나서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포스팅을 한 '빈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서 그들이 좋은 직업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신용으로라도 은행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