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조건에 대해 원점 재검토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분명히 있지만 상황이 바뀐 만큼 다시 협상을 하자는 내용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경제학에서 쓰이는 '매몰비용'이라는 용어의 개념과 이를 적용하여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인지 알아보자.
미시경제학의 생산자이론에서는 여러 비용들의 개념을 구분하는데, 그 중 매몰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매몰비용'은 일단 지출된 후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sunk cost)을 의미하는데, 이는 명백하게 지출된 비용이기는 하지만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고정비용이라고 부르는 것 중 매몰비용의 성격을 갖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생산설비가 독특한 성격을 가져 다른 기업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면, 그것을 갖추는 데 들어간 비용은 매몰비용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고정비용으로 지출된 것 중 원하기만 하면 다시 회수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많이 섞여 있다. 공장 부지나 재판매가 가능한 생산시설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고정비용이 무조건 매몰비용은 아니고,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쉽게 결론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매몰비용은 '회수 가능한 비용'과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고, 고정비용의 반대인 가변비용은 절대 정의상 매몰비용이 될 수 없다. 또한 모든 매몰비용은 고정비용이지만 역으로 모든 고정비용이 모든 매몰비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개인의 행동을 하나씩 예로 들어 '매몰비용'을 이해해보자. 먼저 기업이다. 1990년대 초 미국의 대형항공사들은 한 해 4억 달러 이상의 큰 손실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사들은 계속 운행을 했다. 항공기 사업에서 금전적 손실을 입는데, 왜 항공사 경영진들은 사업을 계속 진행하였을까? 항공사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려면 먼저 항공사들 비용의 일부가 단기적으로는 매몰비용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선 항공사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비행기를 샀고 이를 되팔 수 없다면 이는 이미 매몰비용이 되었다. 그렇다면 운항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은 연료비, 조종사 및 승무원들의 임금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항공사들이 해야 할 것은 표를 팔고 운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총수입과 가변비용(연료비+임금)의 비교이고, 총수입이 이런 가변비용들을 초과한다면 계속 영업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래서 적자 속에서도 지속 영업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매몰비용이 기업의 단기 조업중단 관련 의사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예가 어렵다면 개인의 예를 들어보자. A가 10,000원을 지불하여 영화표를 구매 후 영화를 보러 갔다고 가정하자. 2시간 짜리 영화인데 1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A는 표 값이 아까워서 남은 1시간을 더 보려고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판단일까? A가 지불한 10,000원은 영화가 재미있든 그렇지 않든 절대 돌려받을 수 없는 매몰비용이다. 따라서 남은 1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해보고 영화관을 나오는 것이 A에게는 합리적인 판단이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점심식사를 위해 돌아다니다보면 식당에 손님이 거의 없는데 계속 영업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몇 명이 되지 않는 손님을 받기 위해 점심시간에 식당을 열어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심시간에 영업을 할지 결정할 때, 식당 주인은 고정비용과 가변비용을 구분해야 한다. 여기서 고정비용은 임대료, 일당으로 고용하는 종업원의 임금, 주방용기, 식기 등이다. 이것은 점심시간에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회수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따라서 점심시간에 영업을 할지 결정할 때는 음식재료비, 점심시간 식당 운영에 따른 전기세 및 수도세 등의 가변비용만을 고려해 이것보다 매출이 높으면 영업을 하는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를 보자. 이들에게 있어서 절대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은 무엇일까? 바로 '계약금'인 2,500억 원이다. 이것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해도 회수할 수 없는 돈이고, 인수를 해도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다. (특정 원인으로 소송 등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만약 어떤 경우라도 돌려받을 수 없는 계약금이 아까워서 인수를 해야할지 고민한다면 그것은 정말 비합리적인 판단이다. 사실 개인의 경우 위 영화관 사례처럼 모든 사람이 냉철하고 계산적이지 않다. 따라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 때도 많지만 이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특히, 기업의 미래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계약에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그것에 따른 기회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HDC현대산업개발은 무슨 판단을 내려야할까? 그들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했을 때, 그 기업에 대해 어떻게 가치평가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재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시장에서는 인수 가격이 비싸다고 평가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이 라임펀드에 투자해 손실을 본 것을 숨기는 등 계약파기 소송을 걸 명분도 있다. 여기에 천재지변으로 인해 상황까지 변했는데 이것을 원래 가격대로 인수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에게만 좋은 일이고 HDC현대산업개발 주주들에게는 최악의 일이다. 아마 HDC현대산업개발 역시 이를 알고 인수조건을 재산정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재산정 후 훨씬 낮은 가격에 인수를 하면 괜찮을 수 있고(개인적으로는 이 경우도 별로지만), 협의가 되지 않아 여러가지를 문제삼은 후 최종 계약파기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원래 조건대로 인수를 할 수도 있다. 최종 판단은 HDC현대산업개발이 할테고 나는 주주도 아니기에 상관없지만 이 계약으로 인해 우리는 합리적 선택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우리가 진행하는 부동산 계약에서의 계약금도 매몰비용이고 여기에서의 계약금도 매몰비용이다. 되돌릴 수 없는 매몰비용은 제쳐두고, 우리가 부동산을 매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비용, 그리고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 비용만을 비교해 최종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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