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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유가 폭락으로 보는 카르텔의 이론과 현실

최근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OPEC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유가가 폭락을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우디와 러시아만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감산으로 유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리며 이득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유가 폭락으로 본 카르텔의 이론과 현실을 알아보도록 하자.

 

카르텔(Cartel)이란 과점시장 안의 기업들이(혹은 나라들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약속한 담합이 완전히, 그리고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르텔의 이윤극대화 모형은 다공장독점기업의 그것과 비슷한데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그래프 등의 어려운 내용은 제외하자.

 

카르텔은 독립된 기업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각 기업이 합의된 사항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이득을 더 크게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때에는 존립 그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카르텔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합의된 가격과 목표 산출량이 각 가맹기업에 의해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만이 가격을 약간 내려 판매량을 현저히 증가시킴으로써 더욱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가맹기업의 수가 많아 자신의 행동이 다른 동료기업에 의해 적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 그런 일탈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한 기업이 이탈해 나가거나 협정을 위반하기 시작하면 다른 기업도 다투어 그 뒤를 따르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두고 카르텔이 '내재적인 불안정성(instability)'을 갖는다고 표현한다. 특정 기업이 이런 개별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특히 커질 수 있다.

-개별 행동을 취하는 기업에 대한 신속한 보복이 힘들 때

-카르텔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많아 개별 행동의 적발이 힘들 때

-개별 행동을 취하는 기업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힘들 때

-상품이 이질적이어서 가격의 차이가 품질의 차이를 반영하는지 알기 힘들 때

-경기가 침체되어 수요 부족으로 인한 이윤의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때

 

 

그렇다면 석유수출기구(OPEC)의 역사를 알아보고 이 이론을 최근 감산 합의 실패에 대입해보자.

OPEC은 카르텔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석유가격의 안정화를 도모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석유가격을 가능한 한 높은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카르텔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OPEC이 그 위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에 일어난 제1차 석유파동 때였다. 이 기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아랍국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항의한다는 명목으로 석유의 생산 및 수출을 대폭 감소했다. 그 결과 배럴당 2.5달러였던 석유가격이 단숨에 10달러가 넘게 되었다.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던 세계 경제는 위기를 맞게 되었고 석유시장에서의 패권 역시 미국계 석유회사들에서 OPEC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OPEC의 영향력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회원국들 사이에 이견이 나타났고, 독자적으로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나라까지 생겨났다. 가격을 올리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합의해 놓고서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은 하나의 카르텔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유가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나라들이다. 아무리 사우디의 생산단가가 낮아도 유가가 폭락하면 재정에 부담이 생기고, 사우디보다 생산단가가 높은 러시아 역시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도 부담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미국 역시 유가가 현재 수준이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셰일업체들의 줄도산까지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의 카르텔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위의 카르텔 이론에서 보았듯, 한 기업(나라)은 적발이 힘들고 신속한 보복이 힘들 때 약속을 깨고 몰래 개별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러시아가 주장하듯 본인들은 그 약속을 지켰는데 미국의 셰일업체들이 그 때마다 생산량을 늘려서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하는 것이다. 

 

이론과 지금까지 벌어진 현실은 이렇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사우디와 러시아, 미국이 얼마나 합의를 잘 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는 상태에서 발생한 일이라, 공급의 확대까지 추가돼 유가가 생각 이상으로 폭락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석유 소비국은 유가 하락을 반기는데 이 소비국들조차도 유가 폭락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걱정하고 있다. 치열한 다툼 속에 균형으로 찾아가겠지만 누가 먼저 손 내밀고 양보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