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사실상 결렬됐다. 아직 확정 발표는 아니지만 HDC현산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기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결렬로 판단하고 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아시아나 채권단은 협상 결렬의 책임을 HDC현산에 돌리고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파악하면 어느 쪽이 잘못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HDC현산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앞두고 있었다. 인수 자금은 2.5조원으로 경쟁사가 제시한 1.5조원보다 1조원 더 비싸게 불렀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어느 쪽의 잘못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HDC현산이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인수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경쟁사 및 시장에서의 평가보다도 1조원이나 더 높은 가격을 불렀기 때문이다. 금액으로는 1조원이지만 경쟁사보다 70% 더 높게 부른 가격이었다. 자신의 몸값을 더 높게 받고 싶은 아시아나항공의 잘못도 없었고, 가치 평가를 어떻게 했든 HDC현산의 잘못도 없었다.
그 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가 발생했고, 인수 작업은 연기되었다. 단순히 인수 작업에 차질이 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고,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여행, 항공, 면세 업종에 아시아나항공이 속한 것이 문제였다.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부채만 더 늘어갔고, HDC현산의 입장에서도 2.5조원을 모두 다 지불하고 인수하기엔 큰 부담이었다. 처음부터 가치 평가를 어떻게 했는지는 둘째치고 기존 평가보다 기업의 미래 가치가 더 불안정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수 후 경영 정상화까지 얼마의 돈을 더 쏟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양쪽의 잘못은 없다. 천재지변이 그 원인이고, 이 부분은 서로 조율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HDC현산 입장에서는 기존과 상황이 변했으므로 협상을 중단시키고 싶었을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이 라임펀드에 투자를 해 171억 원의 손실을 보았고, 금호그룹이 라임펀드를 통해 계열사 자금을 아시아나항공에 지원한 내용 등이 나중에 드러난 것이다.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등의 자회사는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통으로 매각될 대상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큰 문제가 된다.
여기에 더해 지난 8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금호고속을 정점으로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자금 조달 방안을 꾸민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부당 지원행위에 가담한 그룹 계열사 9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0억 원을 부과했는데, 물론 아시아나항공 측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HDC현산 입장에서는 위와 같이 몰랐던 내용들이 연달아 터지자 황당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에 행했던 7주간의 실사 기간은 부족했다고 판단해 12주간의 재실사를 제시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재실사를 제시한 것이면 모르겠으나 HDC현산의 요구는 아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HDC현산 회장이라면 시장 평가보다도 훨씬 높게 제시한 인수 금액이 마음에 걸렸을텐데 마침 천재지변도 발생해 재협상의 기회가 생겼고, 더 나아가 상대가 실사 당시 알려주지 않은 부실이 계속 드러났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며 계약을 해지하고 싶을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이 HDC현산 탓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천재지변도 없었고 숨긴 부실이 없었다면 HDC현산이 얼마를 제시했든 계약을 이행하는 것이 맞다. 산업은행 측에서는 인수 금액을 할인해주고, 추후 지원도 해주겠다는데 애초에 신뢰를 잃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그럼에도 HDC현산 측에서 먼저 협상 결렬을 외치지 않은 것은 계약금으로 지급한 2,500억 원에 대한 회수까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실사를 고집해 만약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재실사 과정에서 기존에 숨긴 내용들을 트집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재실사를 계속 거부하면서 빨리 인수나 하라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약 2년 전,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다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이 드러나며 협상이 결렬된 사건이 있었다. 과거 이런 사례를 참고해보면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협상이 결렬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HDC현산 주주들은 이번 협상이 중단되길 바랐고, 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삼양식품 주주들 역시 그랬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다음주 입장 발표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협상 결렬 시 관련 있는 기업들의 주가는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시아나항공은 좋을 게 없을 것 같고, HDC현산은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때문에 좋긴 하겠지만 계약금 2,500억 원에 대해서는 비용 처리 혹은 소송전에 들어갈 것 같다.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8월에도 해외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증가한 삼양식품의 주가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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